[칼럼] 온 국민이 안중근 단지모자를 쓰자!

홍건표 전 부천시장

오늘뉴스 | 기사입력 2014/03/03 [19:03]

[칼럼] 온 국민이 안중근 단지모자를 쓰자!

홍건표 전 부천시장

오늘뉴스 | 입력 : 2014/03/03 [19:03]
▲ 홍건표 전 부천시장
온국민이여! 다 함께 안중근 단지모자를 쓰자!

대한민국 건국 70년을 맞고 있다. 나라를 잃고 광복 후 남북이 분단되고, 6.25동난으로 그나마 남은 시설이 다 잿더미가 되고, 먹을 것도 없던 절망의 나라였다.

나는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그 어려운 시절을 함께하며 오늘에 이르렸다.

돌아보면 참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같은 변화였다. 오늘이 있기까지 굶주림이 얼마며 헐벗음이 얼마였던가...그 참혹한 시절을 나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부모님들은 맹물로 배를 채우시며 배워라! 채근하시고 우리는 갖은 설음을 악물고 배우자! 다짐하며 학생시절을 보냈다.

"나는 지금도 꿀꿀이죽'미군 식당에서나온 음식쓰레기'을 먹으며 연명하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곧 산업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직장의 좋고 나쁨도, 급료의 많고 적음도, 근로시간의 길고 짧음도, 날씨의 춥고 더움도 탓할 수 없었다.

몸이 부셔져도 내 부모형제 내 자식을 살려야하는 현실이 급했던 시절이 생생하다.

다행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택한 것이 오늘이 영광스런 나라를 만든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결정을 나는 하나님이 도우신 축복이라고 믿는다.

광복 후 좌우갈등으로 6.25전쟁도 치루어야 했고, 간신히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찾은 후에도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수없이 많은 피해를 입었고 북한 추종세력의 준동으로 편안할 날이 없었었다.

한마디로 지상에서 가장 악독한 독재국가 북한과 대치하면서 내부적 북한추종세력과의 싸움에 상당한 국력을 쏟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2중 3중고의 어려움 속에도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피와 땀으로 기적을 일구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런 대한민국이 내 생전에 이루어 졌다는 것이 믿기지 안을 정도로 놀랍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한 가지 아직도 우리는 이념적 갈등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어쩜 이 갈등이 골이 광복 후 보다 더 심각하다고 나는 걱정하고 있다. 어쩌다 대한민국자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국회까지 진입하고 (우리나라 어느시대도 이런 시대는 없었다). 큰 성전을 치루는 전사처럼 주창하며 어린 내 자녀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이념의 갈등이 어디서 연유됐는가?

우리는 역사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영.욕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고 그중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는 민족적 다짐과 잘한 역사는 길이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모두 애국자를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는데 등한시 했고 이념적 갈등속에 빗은 피해자를 더 우대했던 것이다.

나는 부천시장으로 자매도시 중국 하얼빈과 지방외교를 하며 하얼빈에 안중근의사 기념사업을 진행했었다.

2005년 처음 하얼빈을 방문했을 때 하얼빈엔 안중근의사 흔적이 한곳도 없었다. 하얼빈에 안중근의사님의 흔적조차 없다니...울분이 터지고..그간 우리정부는 중국정부와 외교을 하고 부천시는 하얼빈시와 10년의 교류를 하면서 안중근 흔적조차 못 만들었다니 하는 죄스런 민족의 한을 품고 하얼빈정부에 “안중근의사 동사건립”을 요청하게 된다.

하얼빈시에선 외국인 동상건립은 중앙정부 소관으로 안되다는 답변이었다.

그래도 나는 “안중근의사님은 비록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도 영웅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얼빈에 안중근흔적을 만들어 주기바랍니다.” 강력히 요청했다.

하얼빈시에선 내 요청을 받아 들여 조선족예술회관 2층에 안중근기념관을 만들고 하얼빈공원(지금의 조린공원)엔 안중근의사님의 동상대신 안중근 휘호비청초당(靑草塘)을 세워 안중근의사님을 기리는 제막을 했다.

안중근기념관엔 안중근의사님의 동영상과 활동사진 휘호 등 안중근의사님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나는 안중근기념관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떨려 나올 수가 없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그 많은 학식을 겸비하고 사나이 굳굳한 기상에 세상을 살아도 크게 성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으셨는데 ..

다 버리고... 부모님도 사랑하는 부인도, 자식도..!

오직 대한독립을 위해 손가락을 짜르고 피로 혈맹을 맺고 원흉 이등을 저격하고 당당히 대한의군 참모준장을 선포하고 ..교수형에 처형당하고 ..

국가적 비운을 안고 부모님전 상서...!부인에게..! 동포에게...!글을 쓰며 얼마나 통곡을 하셨을까!

“너히는 가서 산업에 힘쓰고 ...대한독립이 되면 나는 천국에서 마땅히 만세를 부를 것이다.”

마지막 유언 “내가 죽거든 할빈공원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나를 조국에 반장해 다오” 한마디 남기시고 순국하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의사님의 유해도 찾지 못하고 ..눈물이 앞을 가려 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하얼빈에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얼빈에 진출한 한 사업가가 하얼빈대가에 자비 1억 7천만원을 들여 안중근 동상을 세운 것이다. 당연 시정부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고 철거되고...이 동상을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2009년에 하얼빈역을 출발 여순감옥을 거처 인천항으로 모셔온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안중근동상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국회 뜰에 임시로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신문보도를 보고 나는 또 한번 분개 할 수 밖에 없엇다.

나는 곧바로 안중근동상을 부천에 유치하여 당시 중동공원에 세우고 안중근의사 의거 기념일인 10월 26일 제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중동공원을 안중근공원으로 명명하고 안중근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나는 부천시장으로 안중근의사 동상제막 기념사를 하면서 5번이나 통곡을 했었다. 안중근이 너무 불쌍해서.. 너무 갸륵해서..국가를 위해 장렬히 순국하신 영웅 중에 영웅이셨기에 때문이다.

이후 나는 안중근의사님을 깊이 사모하게 되고 의사님의 단지정신을 이어가는 단지동맹을 맺게 된다.

안중근의사 단지동맹은 12분이 동맹을 맺고 단지를 하고 혈서를 쓰고... 12분 모두 변절없이 산화하셨다.

이 단지정신을 이어받아 나는 13번쩨 단지를 자임하고 안중근의사님 동상앞세서 맹세를 했다.

앞으로 어떤 경우라도 안중근의사님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주창하며 이 땅에 애국운동이 물같이 흐르는 날을 희망하며 살아 갈 것이다.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이념이 흔들리는 것도 종북좌파의 준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안중근의사님의 단지정신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

금번 박근혜대통령이 중국방문 중 안중근의사 동상건립을 요청하여 중국정부에서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제막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박근혜대통령은 진정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애국대통령이라고 존경한다.

역대 어느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외교적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대계! 보훈은 만년대계!” 민족적 스로건이 되길 희망한다.

전 18대, 19대 부천시장. 안중근애국단지동맹회장. 홍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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