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대 정균승 교수,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평"

우리는 지금 그런 커다란 전환기를 살아가고

이영노 | 기사입력 2021/05/09 [09:50]

군산대 정균승 교수,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평"

우리는 지금 그런 커다란 전환기를 살아가고

이영노 | 입력 : 2021/05/09 [09:50]

 

정균승 군산대 교수     ©이영노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전쟁은 '무기전쟁'이었다.


하지만 더 무섭고 가공할 만한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바로 '세균전쟁'이다.

 

 

 
코로나19는 본격적인 세균전쟁의 서막에 불과한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다 해도 더 끔찍하고 가공할 살상력을 지닌 세균이 인류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것은 인류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하나로 뭉쳐 복구에 힘을 썼다.

 
대규모 지진이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합쳐 서로를 도왔다.

 
하지만 코로나는 정반대로 사람들을 뿔뿔히 흩어놓았다.


코로나가 만연할수록 사람들은 살기 위해 더 떨어지고 갈라져야 했다.

 
비교적 짧고 갑작스럽게 닥치는 자연재해와는 달리 장기적이면서 소리 없이 들이닥치는 팬데믹 상황은 사람들을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늪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누군가와 교류하고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팬데믹은 만나고 교류하며 상호작용을 하는 것 자체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폐쇄조치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단절되고 중단되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위축감과 불안감은 일상의 삶을 파괴하기에 충분하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다시 예전의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이 간다.


돌아간다 해도 언제 그럴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오히려 더 가능한 시나리오는 '바이러스 상존 시대'가 아닐까 한다.


이미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기도 전에 더 가공할 변이 바이러스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전 지구촌에 걸쳐 출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낯선 삶의 세계로 정신적 물리적 이주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들로 빽빽히 들어찬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괜찮을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에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또래 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는 학교에 가는 것은 과연 안전한 일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이 지금은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삶의 딜레마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필연적으로 정서 장애와 우울증을 동반할 것이다.

 
사람들끼리 단절되고 파편화될수록 갈등과 분열은 더 심해질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제도 하에서는 어떤 정치세력도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기존의 고리타분한 정치관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다간 큰 봉변을 당할 것이다.

 
획기적인 정치적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고대 노예사회가 중세 봉건주의사회로 바꿔진 것처럼, 봉건주의사회가 다시 근대 시민사회로 별모한 것처럼, 인류는 지금 또 한번의 거대한 이행기의 초입에 서 있는지 모른다.

 
대면사회에서 비대면사회로의 전환,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의 공간의 무게중심 이동이 인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인류가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자 할 때 우리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찾아온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존의 방식대로 일을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까?


만일 시간이 갈수록 기본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먹고살기에 충분할 정도의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절된 사회에서 파편화된 개인이 최소한의 소득조차 얻기 버겁다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할까?

 
풍족한 안식처는 고사하고 고단한 몸을 눕힐 최소한의 집마저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당수 청년들에게 미래가 있기나 한 걸까?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집은 어떻게 마련해주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기본일자리와 기본소득과 기본주택은 시대적 화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거부하고 반발해도 이 거대한 시대적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의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시대의 조류에 순응하여 도도한 물결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표류하다 조난을 당할 것인가.

 
그 선택 여하에 따라 나라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커다란 전환기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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